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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러시아에 대한 이해 - 극동 시베리아 편
2020-11-26 러시아 모스크바무역관 최진형

장정우 모스크바 지사장 현대건설기계(ducej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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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행정 구역 전도


이번에는 극동의 마무리와 함께 시베리아를 알아보겠습니다.

 

이전에 극동에 왜 외국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① 정치·경제적 불안, ② 러시아 법 체계 이해의 어려움, ③ 숙련인력과 인프라 부족, ④ 연관산업의 부족, ⑤ 행정조직의 타성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극동이 가지는 장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지리적 편리성: 인적 자원 교류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에서 1.5시간이 걸립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9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러시아에 공장이나 지점을 만든다고 한다면 본국인 한국과의 왕래와 본국의 지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극동은 이러한 측면에서 아주 유리합니다.

 
공산권 시절부터 북한과의 교류가 있던 지역인지라 한국인에 대해 낯설어하지 않으며 호의적입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 문화권인지라 문화적으로 행정적으로 유럽 업체에 상대적으로 더 호의적이며 노동자들도 유럽계 업체에서 근무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극동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계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유럽계 업체들에 비해 큰 비중을 가지기에 행정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큰 호감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홋카는 물론 시베리아 접경인 이르쿠츠크까지 한국산 자동차 특히 버스와 트럭이 압도적으로 많이 운행되고 있으며 한국 광고판과 행선지를 그대로 달고 다니는 차들이 많이 있는데 한국어가 붙은 중고차들이 거래 시 프리미엄이 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르쿠츠크의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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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고자 촬영


이르쿠츠크의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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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고자 촬영

 

2) 지리적 편리성: 물류비용 절감


물류비용 절감이 가장 큰 이점입니다. 물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제품의 경우 모스크바 인근에 공장을 짓게 되면 한국에서 출발한 원재료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한 후 다시 모스크바나 내륙으로 이동된 후 판매지에 뿌려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운송비가 이중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작점이고 이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CIS 국가에까지 쉽게 연결할 수 있기에 러시아산 제품의 수출에도 유리합니다.
 

3) 저렴한 물가 

 
물가가 낮다는 것은 임금이 낮다는 의미입니다. 러시아는 급여와 준조세의 비율이 6:4 정도 됩니다. 급여와 관련된 각종 조세 및 준조세가 상당해 러시아 기업들은 Grey Salary와 White Salary를 구분합니다. Grey Salary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실제 급여와 노동부에 신고하는 급여가 다른 경우를 말합니다. 세금을 적게 납부하고자 신고는 Rub 30,000로 하지만, 실제로는 Rub 100,000으로 지급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세금은 Rub 30,000으로 나가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을 줄일 수 있습니다. 주로 러시아 기업들이 사용합니다. White Salary는 신고하는 급여와 실지급 급여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외국계 기업들은 White Salary를 지급하는데 이것이 외국계 기업이 현지 업체와 경쟁하기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인데 극동에서는 상대 급여가 낮기에 White Salary를 한다고 하여도 큰 부담이 없습니다.

 

4)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의지


러시아 행정부에는 극동북극개발부라는 기관이 존재합니다. 수장은 장관급이며, 러시아 총리직속 기관으로 극동을 비롯한 격오지 개발을 담당합니다. 주로 관리하는 지역이 북극, 극동 그리고 칼리닌그라드입니다. 칼리닌그라드는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있는 러시아 영토이며 이는 차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사한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경제개발부, 산업통상부와 달리 극동 정책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입니다. 이 정부 부서가 주로 외국계 기업 투자 유치를 담당하며 투자 시 관련 혜택을 주로 제공합니다푸틴 대통령은 극동에 아시아계 기업을 유치해 러시아 경제 발전을 추진하는 차원에서 해당 부서를 만들었으나 복잡한 러시아 행정 시스템에서 극동개발부의 정책만을 따라하는 것에 위험이 많습니다. 경제개발부, 산업통상부보다 힘이 약해 극동북극개발부에서 유치한 기업의 혜택이 다른 유관 부서들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시베리아 출장 전 준비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베리아 행정 구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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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고자 수집

 

러시아라고 하면 가장 흔하게 듣는 지명이 모스크바보다는 시베리아일 것입니다. 시베리아는 춥다는 것의 대명사로도 많이 쓰이며 오지(奧地)라는 의미로도 많이 쓰입니다. 또한 러시아를 관통하는 열차를 '시베리아 횡단열차'라고도 부릅니다.


시베리아는 접근이 어려운 지역입니다. 수도인 모스크바는 8개 방향으로 기차가 연결돼 있습니다. 세인트피터스버그외 블라디보스토크는 항구이며 유럽 및 아시아와 쉽게 연결됩니다. 하지만 시베리아는 항공이 아니고서는 육로로는 철도 외에 접근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현재까지도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고속도로는 없습니다. 고속도로-국도를 넘나들어야 합니다.(현재 모스크바-카잔 고속도로를 블라디보스톡까지 확장 예정)


러시아 횡단열차, 극동횡단열차가 아니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인 이유는 시베리아를 관통해 모스크바와 극동을 연결하는 것이 이 기차 라인의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개통 당시 물동량 자체보다는 인적교류가 우선순위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베리아에는 또 다른 역사가 있습니다. 91년에 개봉한 영화 사이베리아라는 영화(원제 Lost in Siberia, 러시아, 영국 합작영화)에 나오는 강제 수용소입니다. 영화 주인공은 영국인으로 이란에서 고고학 유적 발굴 도중 간첩으로 몰려 소련으로 납치 및 시베리아 형무소에 갇히게 되고 다시 석방되는 내용입니다. 우리로 치면 ‘아오지 탄광’ 같은 이미지가 바로 시베리아입니다.


영화 포스터

Zateryannyy v Sibiri (1991)

자료: 기고자 수집


이 영화가 사실이고 실제로 시베리아에는 많은 노동형무소가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노동형무소가 시작된 건 제정(帝政)러시아 시대 때부터지만 체계적으로 가동된 것은 공산혁명이 시작되고 국가가 안정된 192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주로 귀족, 장교, 교수 등 제정 시대의 고위층과 그 가족을 시베리아로 이주시켜 노동을 시키게 됩니다. 주로 벌목, 철도, 도로 건설 업무에 종사했습니다.


이 시베리아 형무소가 가장 활성화된 것은 1940년 중반 이후 2차대전 포로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입니다. 이로 인해 알려진 이름이 굴락(Gulag)입니다. 굴락의 의미는 ‘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исправительно-трудовых лагерей и колоний, Glavnoye upravleniye ispravitel'no-trudovykh lagerey i koloniy’의 약자로 번역하면 ‘국가보안국 교정 노동수용소 관리기관’의 약자입니다. 굴락에는 재판 없이 임의 판단에 의해 끌려간 인원도 많았고 그 인원들의 성격도 정치범부터 경범죄에 이르며 이웃의 밀고에 의해 그 죄가 확정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굴락은 1929년부터 1960년까지 존재했으며 최대 인원이었을 때에는 500만 명 가까운 인원이 수용돼 있었고 지금 북한에 있는 정치범수용소가 굴락을 모델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리고 매년 수용인원의 10% 정도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착공은 1891년이었으며, 1차 구간이 1898년 완성됐고 최종적으로 1916년 전 구간 개통이 됐으나 단선인 관계로 이후 지속적으로 복선화 및 지선화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제정 러시아 시대, 2차 대전, 전후 냉전 시대를 가리지 않고 공사 노동자들은 시베리아에 유배된 죄수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이 시베리아 출신들 중 유난히 금발이 많습니다. 즉, 고위귀족이나 독일군 포로들이 이주 후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금발 백인 인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시베리아 지역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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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지역의 특이한 점 중에 하나가 알타이입니다. 알타이 공화국은 우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랄은 러시아 행정구역임을 알 수 있고 알타이 역시 러시아의 지방행정구역입니다. 한국에 김(金)씨 성이 많은데 알타이(Alty)라는 말이 카자흐스탄어, 몽골어, 고대 튀르크 어 등에서 Gold(金)를 의미하니 중앙아시아계 민족이 한반도로 이주해 신라지방에 정착하고 이를 토대로 한반도가 이후 형성됐다는 가설에도 부합하는 설명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신라 보검과 알타이 지역 칼 손잡이 비교

경주 계림로 고분에서 나온 보검(왼쪽)은 키질벽화(중앙)와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유적에서 나온 것(맨 오른쪽)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권오영 교수 제공

자료: 기고자 수집


상기 사진자료의 왼쪽 부분은 신라 보검이며 오른쪽은 카자흐스탄 무덤에서 발굴된 것으로 손잡이 부분의 장식이 놀랍도록 흡사하고 만드는 기법 또한 동일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한반도는 농업 국가이고 농업국가에서 부의 상징은 보통 토지입니다. 그렇기에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에서 금은 상대적으로 가치를 덜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유목민들은 토지 소유의 개념이 약하고 자산(資産)을 들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에 금(金)문화가 발전하게 됩니다.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신라가 상대적으로 금 관련 문화가 발달한 것에 대해서는 이런 점을 들어 설명이 가능합니다.


다음 기고 ‘러시아에 대한 이해 3’에서 광활한 러시아 지역 정보를 이어가겠습니다.



※ 이 원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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