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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레이시아의 정치와 향후 전망
  • 외부전문가 기고
  • 말레이시아
  • 쿠알라룸푸르무역관 박지호
  • 2020-08-10
  • 출처 : KOTRA

김훈욱, Next Tech Sdn Bhd 대표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읽다 보면 중요한 변곡점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해방 후 현재의 국가 형태를 갖추는데 영국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의원내각제인 말레이시아의 현대정치를 이해하려면 의회가 구성된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데 주요 역사적 사실은 영국과의 관계를 함께 생각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당정치의 탄생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됐으나 말레이시아는 해방 대신 다시 영국의 식민지로 돌아갔는데 이 때부터 영국의 의회정치를 눈 여겨 보게 됐다. 이후 의회정치에 눈을 뜨게 되면서 1946년 말레이계 보수층에서 온 쟈파르(Dado' Onn bin Jaffar)를 초대총재로 통일 말레이국민조직(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 UMNO)을 창당했고 이어 중국계의 탄 첸로크가 말라야 화교협회(Malayan Chinese Association: MCA)를 창당했다.

 

그보다 약간 앞선 1946년 8월에는 제2차 대전 중 인도계 독립연맹을 정당으로 전환한 말라야 인도회의(Malayan Indian Congress: MIC)가 결성됐다. 이렇게 현재의 말레이시아, 특히 반도 말레이시아 정치의 골격이 되어온 각 주요 민족정당의 기반이 구축됐다.

 

1948년 말라야 협정에 의해 예전 말라야 연합 4개 주와 5개의 비연합 주등 합계 9개 주를 연합해 말라야연방(Federation of Malaya)이 구성됐다. 이후 1955년에는 최초의 헌법평의회인 민선의원선거가 진행돼 끄다주(Kedah주) 술탄가 출신인 압둘 라만(Tengku Abdul Rahman)이 이끄는 말라야연합당(UMNO MCA MIC)이 대승해 정권을 장악했다.

 

이를 토대로 영국과 독립 교섭에 들어갔고 영국이 이를 승인함에 따라 1957년 말라야의 독립을 규정한 말라야 연방협정이 체결돼 같은 해 8월 31일 Penang, 말라카의 양 식민지를 추가해 11개 주로 구성된 독립국 말라야 연방을 선포하게 됐다. 이어서 1959년 8월 독립 후 최초의 총선거가 실시돼 말라야 연합당이 하원 총 의석 104석 중 74의석을 얻어 승리를 거두어 제2차 라만 내각이 발족했다.

 

말레이시아의 결성과 싱가포르의 독립

 

1961년 5월 라만 말라야연방 수상은 말라야, 싱가포르, 북보루네오 및 Sarawak을 포함한 말레이시아(Malaysia)를 결성하는 구상을 발표하고 1963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북보루네오와 Sarawak이 참여하는 말레이시아 협정이 서명 조인돼 연방이 결성됐으나 애석하게도 싱가포르와 여러가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강제 분리 독립되게 된다.

 

이에 따라 정치적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으나 민족 간 대립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1969년에 선거로 촉발되게 된다. 여당연합이 득표율 45.8%로 부진했고 그간 해소되지 않은 민족 간 대립이 표면화하면서 쿠알라룸푸르에서 대규모 민족폭동이 발생했는데 이를「5월 13일 사건」이라 부르고 있다.

 

신경제정책에 의한 근대화의 초석

 

1957년 독립 이후 정권을 이끌어오던 라만 초대수상은 「5월 13일 사건」을 계기로 사임하고 압둘 라작 부수상(Abdul Razak)이 그 뒤를 이어 제2대 수상에 취임했다. 라작 정권은 1970년 빈곤 박멸과 말레이시아의 민족구성을 균형있게 반영한 경제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신경제정책(1971년~90년)(New Economic Policy)을 책정을 시행했다.

 

또한 1971년 여당연합은 10개 정당으로 확대돼 국민전선(Barisan National: BN)을 구성했다. 이어 후세인 온(Hussein Onn) 부수상이 제3대 수상에 취임해 정권을 이끌었지만 1981년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마하티르 부수상이 4대 총리로 정권을 이어 받았다.

 

정권을 이어받은 마하티르는 경제발전과 이슬람화 정책으로 말레이인을 결속하고 장기집권 하면서 농업국가인 말레이시아를 산업국가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97년 7월 태국 바트화 위기를 계기로 말레이시아도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때 마하티르 수상은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의견차이를 보인 안와르 부수상을 해임하게 된다.

 

이후 2003년 마하티르 수상은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후임 압둘라 바다위에게 정권을 넘긴 다음 원로수상으로 물러났다. 이로써 선거로 뽑힌 지도자로서 유일하게 22년간 집권했다는 기록을 세웠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지도자라는 또 다른 기록도 세우게 됐다.

 

그러나 후임 압둘라 수상은 마하티르 만큼의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마하티르가 결정한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마하티르 원로수상과 갈등을 노출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총선에서 안정적 정권유지 기반인 2/3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2010년 나집 라작에게 정권을 넘기게 됐다.

 

승부사 마하티르의 도박

 

나집 수상은 취임 초기 하나의 말레이시아(ONE MALAYSIA)로 인기를 얻었지만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증폭되고 이로 인해 마하티르 원로수상과의 갈등이 심각하게 노출됐다.

 

나집 수상과의 갈등이 파국으로 가던 2016년 마하티르가 정계복귀를 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국민전선(BN)을 버리고 원주민당(PPBM)을 직접 창당해 야당의 지도자로 복귀를 한 것이다. 그리고 2018년 총선에서 다시 한 번 일반인의 의표를 찌르는 결단을 하는데 이번에는 거대 여당인 국민전선(BN) 타도를 목표로 과거 정적이었던 안와르(PKR)와 손을 잡고 희망연대(PH)를 결성해 61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게 된다.

 

2018년 총선 후 의석 분포

구분

연립여당 희망연대(PH)

야당

기타

합계

PKR

(인민정의)

DAP

(인민행동)

PPBM

(원주민)

AMANAH

BN

(국민전선)

PAS

(무슬림)

WARI-SAN

IND

(인도계)

획득 의석

49

42

12

10

79

18

8

3

1

소계

113

108

1

222

비율(%)

50.9

49.1

100

 

총선 결과 및 말레이시아 역대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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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서 보듯 마하티르는 승리를 했지만 야당에 0.1%(4석) 앞서는 불안한 정권이 탄생됐다. 그리고 마하티르는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2년후 안와르에게 정권 이양을 약속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비록 정권교체는 이뤄졌지만 국가경영의 경험이 일천한 희망연대(PH)가 미숙함을 보이면서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게 되자 불안을 느낀 정적인 말련 2인자인 안와르가 적극적으로 정권이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마하티르는 2020년 11월에 예정된 아세안 정상회의 후 물러나겠다는 정치일정을 제시하면서 갈등을 봉합하는 듯 했으나 승부사 마하티르 수상은 다시 정치적 도박을 했다. 즉 2020년 2월 24일 마하티르는 안와르에게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희망연대를 탈퇴하면서 수상직 사임계를 국왕에게 제출했고 압둘라 국왕은 이를 수리하면서 마하티르에게 임시 총리직을 부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매체들은 마하티르의 이번 정치적 도박을 두고 그가 안와르를 제외한 새로운 정계개편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이 사태를 두고 다급해진 안와르는 마하티르 수상이 야당인 말레이국민연합(UMNO)과 범말레이시아 이슬람당(PAS)이 새로운 연정을 모의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스트레이트 타임지는 마하티르가 새로운 집권 연정을 구성하려면 의회 222석 가운데 최소 112석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새 연정에 국민전선(BN) 의원 41명을 포함, PPBM 등 123명의 의원들이 합류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런 예측과 달리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마하티르의 수상직 사임계를 받은 국왕은 하원에서 과반의 신임을 얻은 의원을 총리로 임명하는 말레이시아 헌법에 따라 전체 의원과 개별 면담을 통해 차기 총리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유력한 후보였던 마하티르 임시 총리와 안와르 인민정의당(PKR) 총재를 제치고 무히딘 야신을 제8대 총리로 지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위기를 느낀 안와르는 갈등을 접고 다시 마하티르 지지를 선언했지만 3월 1일 국왕의 지지를 받은 무히딘 야신이 8대 총리로 취임하게 됐다. 마하티르는 이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과반수 이상의 의원명단이 있다며 국회표결을 요구했지만 무히딘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연기하고 있다.

 

투표 인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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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전망과 한국 진출기업의 대응  

 

그러면 향후 정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의 국회의원 분포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는 누구도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하티르가 안와르(PKR)와의 연정을 청산하고 다른 정당과 연합을 한다 해도 안정적인 의석확보는 미지수이고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독자적인 세력이 없는 무히딘 현 수상은 더 불리하다.

 

이미 다수의 UMNO 인사를 내각에 영입했지만 그 정도로는 불안한지 나집정권 당시 자신을 징계한 BN으로 다시 복귀할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마하티르는 조속한 국회표결을 요구하고 독자세력이 필요한 무히딘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정지작업을 할 것 같다.

 

그리고 당분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울 수도 있지만 국회를 해산하고 실시하는 총선을 예상할 수도 있다. 총선은 국회 해산 후 60일 이내에 실시하면 되지만 통상 짧은 시간에 이뤄진다. 정보를 쥔 여당이 여론의 추이를 참고하면서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2주 정도의 짧은 시간에 속전속결로 진행하면 준비가 부족한 야당에게 승리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취임 후 코로나 사태로 제대로 된 정책을 펴 보지 못하고 있는 무히딘에게 총선이라는 카드 또한 함부로 던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영향 때문인지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 있다. 즉 기업하던 사람이 정치를 하거나 판·검사가 정치를 하는 경우는 드물고 정치는 대부분 젊은 시절부터 정치를 한 전문 정치가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당은 각 민족을 대표하고 자기 민족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 국민들을 상대로 해야 하는 기업들은 정당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정권이 바뀌고 특정기업이 문제가 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정치인과 줄을 대기보다 현지의 법을 준수하고 일상적인 내부관리에 충실해야 할 것 같다.

 


※ 해당 원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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