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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무역관 르포] WTO 개혁 논의 수면 위로… 국제통상질서 재편 속 우리의 플레이북은?
2018-11-30 이정민 미국 워싱톤무역관

이종건 KOTRA 워싱턴 무역관


 


트럼프 대통령의 WTO 체제 불신으로 촉발된 제도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 미국 정부는 스스로 구축해 놓은 WTO체제가 오히려 자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판단하고 탈퇴까지 불사하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의 WTO 탈퇴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WTO 개혁을 통해 중국이 온전히 자유시장경제에 편입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변화 속에 WTO 체제의 운명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역 분쟁을 가장한 미중 패권 쟁탈전 또한 조속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불확실성과 갈등의 조류 속에 우리도 WTO 개혁 논의에 선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룰 세터(Rule-setter)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확보하고, 미중 분쟁 장기화에 대비하여 정교한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미중 갈등 속 WTO 개혁 논의 수면 위로 급부상

 

11월 27일~12월 1일 동안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서는 통상갈등 조정을 위한 미중 정상 회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이에 못지않은 중대 이슈의 한 축으로 WTO 개혁 논의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의 'America First' 통상정책이 1947년 GATT 출범 이후 70년 이상 유지된 다자간  통상규범 WTO 체제의 존립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위기감이 이번 G20에서 WTO 개혁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일관되게 WTO 체제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다고 불만을 토로해왔으며, 일각에서는 미국의 탈퇴 움직임까지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WTO가 강력한 제도개혁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탈퇴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인터넷 매체 Axios는 익명의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하여 미국 정부가 WTO 최혜국(MFN) 관세양허를 중단하는 법안(US Fair and Reciprocal Tariff Act)을 입안 중에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 케인 하셋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WTO 가입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며, "중국을 WTO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미국은 중국 불공정 무역행위, 즉 국영기업 지원, 과잉생산, 지재권 침해, 기술 침탈 등의 문제를 WTO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며 WTO 제도의 전면 개혁을 주장해 온 바 있다. 이에 중국은 WTO 체제 개혁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나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고, 특정 강대국이 아닌 개도국들의 보편적 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어 미중 간 주장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WTO 탈퇴 주장, 과연 브러핑(Bluffing)에 불과한가?

 

과연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WTO 탈퇴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다와 불가능하다는 의견으로 크게 엇갈린다. 한 마디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WTO와 같은 무역협정 탈퇴를 강행할 경우 결국 법정에서 그 합법성을 두고 다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국 헌법은 통상관련 결정을 의회에게 위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의회의 승인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무역협정 탈퇴를 결정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허프 바우어 선임연구원은 WTO와 같은 무역협정은 통상보다 외교적 성격이 강해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수입 관세율을 조정하는 데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으나 무역협정 탈퇴는 외교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통상법은 애초부터 입법부가 무역협정 탈퇴를 요구할 가능성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무역협정을 협상하고 집행하는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무역협정 탈퇴를 요구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이럴 경우를 대비한 명시적 법률조항이 부재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역대 어떤 미국 대통령도 무역협정 탈퇴를 추진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법원의 판례 역시 존재하지 않다. 따라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없이 WTO를 탈퇴하고, 매우 높은 가능성으로 연방대법원이 위헌 심판에 들어갈 경우 승패와 상관없이 법리 싸움에만 최소 수년의 소요되고 그 기간동안 국제 통상 질서의 혼란은 자명하다.

 

국제적 불안 가중… 일부에서 최악의 시나리오 제기 중

 

미국의 WTO 탈퇴 가능성에 주변국과 미국 내 연구소들의 우려는 생각보다 깊어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WTO 상소기구의 신임 재판관 임명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등 노골적으로 WTO 체제를 비토하고 있다. 이번 G20 정상회의를 며칠 앞두고EU가 서둘러 WTO 개혁안을 제출한 것도 이러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U는 이번 개혁안을 통해 WTO 판결 절차 신속화, 심판 범위 축소, 주권국  법률에 대한 재해석 금지 등 미국 측의 의견을 부분 수용하고 있으나, 대중 제재와 무역적자 해소로 요약되는 미국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22일 WTO는 미국의 232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대해 중국, EU, 캐나다 등 7개 국이 제소한 규정 위반 여부를 가리는 심의기구 구성을 결정했다. 만약 WTO가 판결을 통해 '국가안보'의 목적으로 부과한 232조 관세가 정당하지 않다고 제소 측의 손을 들어 준다면, 이를 빌미로 트럼프 대통령은 WTO 탈퇴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미국 내 대표적 통상전문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의 WTO 탈퇴가 초래할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룬 보고서를 발간했다. WTO 탈퇴는 미국이 GATT, 동경라운드, 우루과이라운드 등 지난한 과정을 통해 수십년에 걸쳐 낮춰온 관세를 일거에 1930년 수준으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럴 경우 2017년 기준 평균 3.3%에 불과한 미국의 수입관세가 무려 32.3%로 폭증하고 이에 따른 타국의 보복관세 부과가 이어지면서 무역 세계대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절충점은 존재하는가?

 

물론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WTO 탈퇴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미국이 국제통상 질서에서 리더십을 회복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WTO 제도 개혁을 통해 중국의 불공정 행위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데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카토 연구소는 'WTO 체제 內 중국의 무역관행 규제방안'이라는 제목의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정부의 인식과 달리 중국의 불공정 관행을 규제하기 위해 WTO체제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를 위해 미국 주도의 규범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재가입하고 중국의 가입을 유도함으로써 다자간 체제 안으로 중국을 흡수할 것을 주문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거스텐 박사도 전후 브레튼우드 체제 구축, 금본위제 폐지, GATT체제 확립, 프라자합의 선언 등 미국이 분기점마다 발휘했던 G1으로서 역할을 열거하며, 지금이 그러한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WTO 개혁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직까지는 그럴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 WTO 파리 회의에 참석한 WTO 주재 중국 대사는 조만간 중국 측의 개혁안을 제시하겠다며 WTO 개혁 논의 참여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타국들이 WTO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경제발전을 좌초시키려는 덫을 놓는 시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고 언급하며 현재 미국과 그 우방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WTO 개혁 논의에 대한 불신과 경계를 숨기지 않았다.

 

각국들은 국제무역 규범 새판짜기에 돌입

 

지난 9월 25일 미국, 일본, EU의 통상장관은 뉴욕에서 만나 국제 통상질서 정립 방안을 논의하고 WTO 개혁안을 3자가 공동 제안하는 데 합의했다. 3자 공동성명에서 구체적으로 중국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비시장적(Non-market) 경제 정책 및 관행, 국영기업/부당보조금, 강제 기술이전 요구 등에 강력 대응을 천명함으로써 미·일·EU가 협력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새판짜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편, 캐나다도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캐나다 정부는 주요국 통상장관을 초청하여 WTO 개혁 논의에 불을 지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호주, 브라질, 일본, 노르웨이 등이 참가한 회의에 미국과 중국은 초청받지 못했다. 주최 측 캐나다는 "국제통상질서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사라진 상황에서 WTO 회원국들이 연합하여 새로운 개혁에 총의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주요국들은 新국제 통상 규범 정립 과정에서 지분 늘리기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현 시점에 어느 때보다 우리의 적극적이고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는 기회를 낳는다

 

아직 G20 정상회의 결과를 점치기는 이르나 이번 미중 통상 담판에서 극적인 타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언론의 분석이다. 일부 양국 간 갈등 완화는 있을지언정 이도 휴전의 수준이지 종전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더욱이 트럼프정부는 미국 경제의 호조세, 중국 경제의 높은 수출의존도, 양국 내수시장 규모 차이 등 경제 역학구조 상 대중 무역전쟁을 질 수 없는 게임으로 여기고 있어 미중 갈등 조기 봉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중국 양국에 교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위기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다.

 

하지만, 위기는 반드시 기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미국의 301조 관세부과 등 일련의 대중 무역제재가 오랫동안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해 고착된 미국의 해외아웃소싱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반도체, 전자기기, 자동차부품 등 해외부품 수입의존 비중이 높은 분야에서 미국의 기존 중국산 수입을 대체할 제3국의 수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301조 관세 대상 품목 7,100여 개를 분석했을 때 중국의 대미 수출은 2,422억 달러이고, 동일 품목에서 한국의 대미 수출은 545억 달러 규모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의 대미 수출 경합도가 높은 분야에서 양국의 대미 수출은 565억 달러에 달한다. 이중에는 우리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 자동차부품, 항공부품, 기타 중간재 등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대중 관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우위를 활용한다면 우리 기업들의 선전이 예상되기도 한다. 물론 순진한 낙관론은 금물이다. 같은 품목(HS코드 분류 기준)이라도 세부적으로는 가격, 성능, 사양, 공정단계 등에서 다양한 변수가 있어 즉각적인 중국산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대미 수출경쟁자인 일본, 독일, 대만, 말레이시아 등과의 세부적인 수출 경합성과 밸류체인 내 애플리케이션까지 고려하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판이 부딛치는 강도의 통상 지각 변동 속에 전 세계적 '규범(Rulebook)'이 다시 쓰여지고 있으며, 각국은 실용적 '교범(Playbook)'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큰 그림을 조망함과도 동시에 디테일 속에 악마까지 잡는 묘안이 우리 정부와 기업들에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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