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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아프리카에서는 왜 신용카드를 받지 않지?
  • 외부전문가 기고
  • 이예은
  • 2014-08-14
  • 출처 : KOTRA

 

아프리카에서는 왜 신용카드를 받지 않지?

 

개발마케팅연구소 김용빈 소장

 

 

 

서울의 2014년은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경제활동인구 1인당 약 4장의 신용카드가 발급되어 있고, 천원도 안 되는 소액결제에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정도로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다. 신용카드로 대중교통 운임도 결제하고, 학생증이나 사원증 겸용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예 형태도 없이 스마트폰에 앱 카드라는 이름으로 신용카드가 들어가 있기도 하는 등 현금 없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신용카드 사용에 조금만 장애가 있어도 불편함을 크게 느낀다.

 

아프리카 출장길에는 꽤 많은 현금을 챙겨야 한다. 공항, 대형 호텔, 외국계 마트 등이 아니고서는 신용카드 사용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표는 어떤 국내 기업 실무자가 작성한 가봉 출장정보의 일부인데, 꼼꼼한 작성자가 항목별 단가 외에도 비고란에 신용카드 사용 가부를 업소마다 표시해 놓았다.

 

<가봉 출장 정보>

자료원: 한국 기업 실무자 작성

 

위의 표 뒤에는 현지식당 8개를 분류해 놓았는데, 음식 종목과 관계없이 신용카드는 모두 ‘사용 불가’이다. 독립 이후 50년 넘도록 이렇다 할 분쟁도 없었고 석유 등 천연자원도 풍부한 덕에 사하라 이남에서는 꽤 잘 산다고 하는 가봉이 이렇다. 대신 현지화가 아닌 미화나 유로화를 사용하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다. 꼭 현지화를 사용해야 하는 곳에는 반드시 정식 환전소나 비공식 환전상이 있다. 그 옛날 남대문시장 골목에서 배에 전대를 차고 허름한 의자에 앉아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외국인이 지나가면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손님을 부르던 우리네 암달러상 아줌마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런데 신용카드 사용은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물론, 같은 아프리카라도 나라마다 환경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껌을 하나 사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한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에 비해서도 아프리카에서의 신용카드 이용률은 전체적으로 무척 낮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도 물적, 제도적 인프라의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신용카드를 쓰려면 생각보다 많은 물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우리는 ‘보이는 인프라’만 보기 때문에 신용카드 사용에 필요한 인프라라고 해봐야 카드를 ‘긋는’ 단말기 또는 단말기와 컴퓨터 화면이 연결되어 있는 POS(Point of Sales) 시스템 정도가 전부인 줄 안다.

 

실제로는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매하면서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긁으면 사용금액과 신용카드 정보가 통신망(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PSTN 유선 전화망)을 타고 가서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카드가 문제없고, 그 정도 사용액은 미리 정해진 신용한도 내에 있으니 고객에서 물건을 줘라.’ 하면서 카드회사가 가맹점에 결제를 확인해 주는 과정이다. 물건을 팔고 난 후 상점 주인은 매출전표를 카드사에 넘긴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이를 ‘매입’한다고 한다. 상점 주인은 손님에서 현금을 받지 않았으니 법적으로 외상매출 채권이 생긴 것이고, 신용카드 회사는 이 채권을 매입한 것이다. 원래 손님이 한 달쯤 뒤에 결제할 것을 신용카드사는 전표매입 2, 3일 후에 ‘미리’ 현금으로 내준다. 물론, 그 기간만큼의 이자를 수수료로 떼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지급결제제도

자료원: 한국은행 2009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 수수료에는 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금융거래를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에 대한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다. 손님이 상점에서 카드를 긋는 행위와 신용카드 회사 시스템 사이를 연결해 주는 VAN(Value Added Network) 사업자가 있어야 거래가 가능하다. ‘부가가치통신망’ 사업자로 불리는 이들은 가맹점에서 어떤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단말기와 그 신용카드사 시스템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구축하고 그 사용료를 받는 통신사업자다.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고 톨게이트에서 사용료를 받는 사업과 비즈니스 모델이 거의 같다. 고속버스 고객이 직접 톨게이트에 지불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속버스를 타면서 내는 운임에는 도로사용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이 VAN 사업자가 없으면 상점마다 모든 신용카드용 단말기를 따로따로 갖추고 서로 다른 통신망을 써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우리나라 신용카드 도입 초기에 상점 입구에는 그 상점에서 결제할 수 있는 신용카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도 있으시리라.

 

이 VAN 사업자의 단말기 – 통신망 – 서버 네트워크 역시 일종의 중요한 인프라다. 이보다 더 아래에 있는 인프라는 물론 공용 통신망이다. VAN 사업자는 단말기와 서버를 시스템으로 구축하지만 통신망은 일반적인 통신망을 임대해 쓴다. 이것까지 전용망으로 깔아야 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조차 신용카드 사용자는 몇 명 되지 않을 테고, 건당 사용액이 최소 5만 원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프리카 유선 통신망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 이런 인프라의 부족이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는데 일차적인 장애물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승인’과 관련해서 생기는 문제다.

 

승인 문제를 지나면 ‘결제’ 문제와 만나게 된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정해진 날짜에 신용카드 회사에 돈을 갚아야 하는데, 만약 매달 사용금액을 직접 카드회사에 송금한다고 하면 과연 여러분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 줄 회사가 있을까 모르겠다. 은행 잔액 안에서만 사용하는 직불카드나 체크카드가 아니더라도 실무적으로 신용카드는 은행 결제계좌와 연결해 운용된다. 그러니까 신용카드가 있고 은행 계좌가 있어도 신용카드사와 연결해주는 금융공동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금융공동망…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참으로 요원한 얘기다.

 

승인이니 결제니 하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 좀 더 파고들어 가면 보다 본질적인 문제와 만나게 된다. 바로 ‘신용’ 문제다. 명색이 신용카드 아닌가. 신용이 없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도 신용카드를 쓸 수 없다. 아프리카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신용이 있는지 없는지, 있어도 어느 정도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카드발급 신청자의 재산보유 상태, 고용 상태, 금융거래 내역, 세금이나 공과금 납부 내역, 통신요금 등 연체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어느 정도 신용을 인정할 것인지 결정하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확립된 것이 없다. 이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거대한 제도적 인프라라서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외국인이 외국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를 들고 오면 어떨까? 요새는 인터넷이라는 요물이 앞에서 언급한 모든 제약사항을 뛰어넘어 외국 시스템을 직접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신용카드를 받지 않을까? 이자율과 수수료가 과다해서? 혹은 우리나라에서처럼 세원(稅源) 노출을 꺼려서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둘 다인 것 같다. 아프리카 국가의 과세 당국이 한국 국세청처럼 카드거래를 들여다볼 수단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한국 관세청은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사용하는 신용카드 내역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모양이다. 해외여행에서 명품을 구매하면 인천공항 세관이 여러분의 성실한 신고를 기다린다는 걸 잊지 마시라…)

 

그럼, 신용카드 사용이 전혀 불가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위에서 살펴본 출장 준비용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곳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게 인프라가 불비한 가운데서도 가능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10여 년 전, 신용카드 사용이 극도로 어려울 때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 소재한 외국계 호텔에서 카드결제를 할 때였다. 호텔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해서 카드 번호와 결제 금액을 불러주고 무언가를 받아 적는다. 승인번호다. 그런 다음 카드를 수동식(!) 전표기에 넣고 긁는다. 카드 위에 3장짜리 카드전표 세트를 올려놓고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지르면 카드의 돌출된 글자들이 전표에 찍힌다. (지금 보면 아무 필요 없을 것 같은 돌출된 카드 위 문자에는 그런 역사적 연유가 있다!) 거기에 손으로 결제금액을 적고, 고객의 서명을 받으면 결제가 완료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다 전화해서 물어봤느냐는 것이다. 현지에는 카드사도, 승인 시스템도 없는데

 

그 호텔 직원은 런던에 전화를 해서 승인번호를 땄다. 나중에 확인해 보면 결제대금도 당연히 런던으로 간다. 즉, 나는 아프리카에서 호텔 서비스를 사용하고 런던에다 결제를 한 것인데, 왜 그럴까? 아마도 ‘과실송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런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개도국은 늘 외화가 부족하다. 국가에서 나서서 통제를 하기 마련이라서 외국인 투자자가 현지에서 번 돈을 본국으로 내보내기는 쉽지가 않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본국에서 카드 승인을 받고 결제대금을 받으면 자동으로 과실송금을 한 것이 된다. 추가되는 비용은 국제전화 비용 정도이지만, 이마저도 비싼 호텔비에 이미 포함되어 있으니 매우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호텔은 현지에서 현금으로 결제받은 돈에 본국에서 필요한 만큼만 역송금된 돈으로 운영을 한다. 그러니 호텔영업 하면서 쌓아두는 돈이 거의 없고, 발생하는 이익은 세무 당국이 허용하는 최저치에 맞춰진다. 과실송금과 절세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인 것이다. 보통 국제적인 호텔 체인이 이런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일부 현지인도 외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서 같은 방식으로 활용한다.

 

여기에는 물론 ‘규모의 경제’ 논리도 한몫한다. 내국인의 신용카드 사용이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많지 않으니,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지 않는 상점에서는 이렇게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드는 결제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충분한 양의 거래가 이뤄지는 대형 호텔 정도라야 신용카드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IT 기술의 발달, 특히 이동전화의 일반화 덕에 아프리카에서도 신용카드 사용이 점차 늘고 있다. 일부 업소에서는 무선으로 작동하는 이동식 결제 단말기를 사용하는데, 모바일 인터넷을 통하여 주로 해외 승인시스템을 이용한다. 각국에서 국내 승인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도 아직 대부분은 직불카드이거나 체크카드가 주종이기는 하다. 물론, 아프리카 54개국의 상황은 제각각 다 다르다. 전체적인 추세가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 아프리카 출장길에 느끼는 불편함은 신용카드 사용 말고도 한둘이 아니다. 이는 아프리카 사회가 극단적인 불균형발전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인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고, 불편함은 혁신의 아버지 아닌가. 우리 비즈니스맨이 이런 불편함에 불평하기보다는 그 불편함을 분석해 보고 원인을 찾아낸 다음, 바로 거기서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고 사업화하기를 기대한다.

 

 

※ 이 원고는 MEKA 전문필진이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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