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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격동 50년, 나이지리아 분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하편)
  • 외부전문가 기고
  • 나이지리아
  • 이예은
  • 2014-07-21
  • 출처 : KOTRA

 

격동 50년, 나이지리아 분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하편)

 

개발마케팅연구소 김용빈 소장

 

 

 

그럼, 2011년 말 나이지리아를 휩쓴 폭력 사태가 오로지 종교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영국은 나이지리아 식민통치 시기에 항구가 있는 남부 기독교도와 북부 회교도를 분리해서 활용했다. 자신들의 기독교적 문화를 잘 받아들이는 남부는 상업지역이 되었지만, 이슬람 신앙을 고수하는 북부는 식민지 군대로 활용했다. 1960년 나이지리아가 독립하자, 인구가 좀 더 많고 식민지 군대를 물려받은 이슬람 군부가 중심이 되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수많은 쿠데타가 줄을 이었지만, 모두 북부 회교도가 정권을 놓고 벌인 집안싸움이었다.

 

그러기를 수십 년 만에 1999년 드디어 민선 대통령이 집권한다. 올루세군 오바산조. 그 자신도 1970년대 쿠데타로 집권을 했었으나 반대파에게 꺾여 수년간 수감생활을 하는 등 곡절이 많은 인물이다. 요루바족 출신으로 군대에서 입신할 때는 회교도로 행세하다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런 오바산조가 집권하는 데는 남북 정치세력 사이에 대통령직을 2번씩 교대로 집권한다는, 일종의 ‘국민대타협’ 같은 이면 합의가 있었다. 이 합의에 따라 오바산조는 1999년부터 4년 임기를 두 번 채우고 2007년 회교권 대표인 야르아두아에게 정권을 넘긴다.

 

그런데 야르아두아가 첫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2010년 병사하자 문제가 생겼다. 상호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서로 다른 종교권에서 맡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 인물은 당시 부통령이던 기독교도 조나선 굿럭이었고, 이때부터 북부 회교권에서는 불만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2011년 벌어진 대선에서 결국 조나선 굿럭이 정식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북부 회교도의 의구심은 확신이 되었다. 이때부터 전면적인 저항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를 보면 나이지리아 사태가 이슬람에 심취한 일부 과격분자의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민족적 감정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물려있는 갈등임을 알 수 있다.

 

테러사태 발생지역을 이번에는 종교 분포지도에 따라 알아보자. 이를 통해 모든 테러사태는 모두 이슬람권에서도 성역(聖域)에 속하는 지역이거나, 이슬람과 기독교 지역의 접경지대(이른바 ‘전선(戰線)’)에서 벌어졌다. 타격 대상은 기독교계 시설이거나, 사소한 분쟁에서 기독교계를 편든(혹은 편드는 것처럼 보이는) 경찰, 행정관서 등이었다.

 

이것은 일련의 테러사태가 매우 무질서해 보이지만 이슬람 세력의 전통적인 주장-회교권에 대한 기독교권의 불간섭과 독자적인 통치-을 실현하는 범위 내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슬람 지역에 진입한 기독교 세력을 밀어내려고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런 사태에 대응하여 기독교 지역에서 반이슬람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다. 즉, 기독교 지역에 머물고 있는 한 이슬람교도에게 직접 공격당할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부족·정치·종교 문제가 뒤얽힌 상황에 굿럭 정권은 또 다른 불을 지른다. 동북부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생뚱맞게 유가보조금을 없애 버린 것이다. 이 발표에 격분해서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사태가 이어지고, 진압과정에서 수백 명이 사망했다. 유가보조금은 전 국민이 관련된 문제이니 지역적으로는 분란이 없을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전국적인 시위사태 와중에도 유독 북부 도시에서 더 큰 규모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석유제품은 생필품이기 때문에 서민에 미치는 여파가 직접적이고 또 매우 크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처럼 빈부의 격차가 심하면 오히려 정부에서 유가보조금을 내줘서 소비자가격을 낮춘다. 즉, 부자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의 차비를 보조해주는 격이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연간 80억 달러에 달하는 유가보조금을 삭감해서 정부 재정을 건전하게 하겠다고 했지만, 서민이나 노조의 생각은 달랐다. 세금의 대부분이 원유 생산에서 나오는 마당에 유가보조금을 없애는 것은 서민만 죽어 나가는 정책이라고 보고 극렬하게 저항하였다. 특히, 도로가 열악하고 물류비가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큰 북부에 사는 회교도는 남부 기독교도에 비해서 더욱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정책을, 온 나라가 종교-정치적으로 극렬한 갈등이 분출되는 시기에, 회교 지역에 대한 비상사태와 함께 기독교인 대통령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야말로 장작불에 휘발유를 끼얹은 꼴이 되었다.

 

물론, 나이지리아에 종교 간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유가 생산되는데도 그 부를 모두 중앙정부와 외국 기업에 빼앗기고 있다는 피해의식에서 시작된 남부 유전지대에서는 앞에서 예로 들었던 외국인 납치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아래는 앞에서 설명한 분석에 따라 테러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나름대로 수립한 것이다.

 

□ 현지 정세변화 Monitoring 지표

  - 남부 기독교계에서 무력대응(보복공격)에 나서는가?

  - 이슬람의 공격 목표가 북부를 벗어나 남부로 향하는가?

  - 북부에 대한 정부대응이 단순한 테러진압을 과도하게 넘어서는가?

  - 정부진압에 반발하는 군부세력의 조직적 이탈이 있는가? (전면적 내전발발로 국면전환)

  -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발생하는가?

 

 대응방안

 

  - 현 사태는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므로, 전면전 발생 전까지는 영업/공사수행에 지장 없을 것으로 전망(현재까지는 기존의 대가요구성 외국인 납치를 보다 큰 위협으로 평가)

  - 친서방 발언, 행동은 자제하고 한국 기업임을 공공연히 밝히지 말 것(한국→친미→친서방→친기독교)

  - 현지 종교활동 참여 및 종교단체에 대한 직접 기부 등은 자제

  - 지역 community와의 유대 강화로 현지 정세변화 숙지

  - 비상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작성하고, 발생 시 Evacuation Plan에 따라 행동

 

사실, 위 보고서에서 가정한 사태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고 하는 것은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그 대책을 생각해 두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 결론은 부분적으로나마 이른바 ‘가설사고’에 기초한 것이다. 가설사고란 비록 시간과 정보가 한정되어 있더라도 문제발생 시점에서 잠정적이나마 최선의 결론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옳다는 사고방식인데, 상황이 전개되어 감에 따라 잠정적인 결론을 수정해 나가면서 최선의 대안을 연속적으로 수립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종교, 정치분쟁과 같이 중장기 예측이 쉽지 않을 경우에 더욱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 이슬람의 탈을 쓴 폭력집단, 보코 하람

 

북부지역에는 여러 수준의 반정부 집단이 존재하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세력은 포악하고 무자비한 Boko Haram이라는 급진 이슬람 세력이다. 미국 CIA가 선정한 아프리카 내 3대 이슬람 무장단체(나머지 2개 단체는 알제리에 있는 알 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와 소말리아에 있는 Al Shabab이다. 2002년 Kanuri족을 중심으로 Muhammad Yusuf가 창설한 조직이다. 단체명 Boko Haram은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다.’라는 뜻으로 이슬람 법인 Sharia를 공식 통치규범으로 해야 한다는 강령을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 비롯된 그 어떤 생활양식도 거부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축구장에 폭탄테러를 가하기도 했고, 심지어 2013년 2월에는 자기들을 도우러 북한에서 파견된 의사 3명을 참살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보코 하람=Kanuri족’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Kanuri족은 그냥 평범한, 이슬람을 믿는 부족일 뿐이다. 보코 하람은 거기서도 제정신이 아닌 폭력집단이자,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조주의적 원리주의만이 원리라고 믿는 사교(邪敎)집단이다. 이슬람 무장세력도 참 여러 가지인데, 이 보코 하람은 반인륜적이고 비상식적인 면에서는 단연 최악의 단체이다. 2014년에 들어서만 2000여 명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니 보코 하람은 카메룬에서도 토벌 대상이다. 4월 14일 여학생 납치사건이 발생한 후 나이지리아와 니제르, 카메룬, 차드, 베냉 등 서아프리카 국가 정상은 5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주선으로 안보회의를 열어 보코 하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정보 교환 등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자고 합의하였다. 그 후속조치로 6월 초 카메룬은 국경을 넘은 보코 하람 60여 명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그럼, 나이지리아 북부는 보코 하람의 땅인가? 그렇지 않다. 원래 이슬람 왕국(Sultanate)이 있던 땅이라 공식 행정단위도 아니고 품계도 한 단계 낮아지기는 했지만 26개 정도의 Emirate가 존재하며 그보다 더 많은 하위 조직이 건재해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과격 이슬람 무장세력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 있는 Emir는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진정한 지도자이다. 얼마 전 부패한 현 정부에 맞서다 중앙은행 총재 자리에서 물러난 라미도 사누시(Lamido Sanusi)가 고향으로 돌아가 최대 Emirate로 꼽히는 Kano의 Emir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렇듯 나이지리아 북부는 회교도의 땅에 기독교 세력이 점점이 들어와 박혀있는 형국이다. 이 점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회교도의 솔직한 속내이고, 이런 정서적 바탕 위에 이 점을 폭력을 써서라도 밀어내고자 하는 과격분자가 보코 하람이 된 것이다.

 

17세기 초 서부 아프리카 일대의 전통 정치세력

자료원: Wikipedia

 

아프리카의 남부, 북부의 폭력적 분쟁 양상은 그 원인이 판이하다. 북부에서의 폭력은 정치적인 배경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종교적인 이유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있다. 남부에서의 폭력 역시 정치적인 명분이 일부라고 있는 것과 비즈니스로서의 외국인 납치가 있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알더라도 그렇게 복잡한 구석까지 알 수는 없다고 치부해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도 아니다. 늘 상황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최선을 다해 분석한다면 나이지리아도 멀기만 한 시장은 아니다. 우리가 지레 포기하는 사이, 독한 연구와 고민으로 나이지리아를 향하는 이들이 있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KOTRA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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