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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SNS 기업 일으키기까지
  • 현장·인터뷰
  • 중국
  • 베이징무역관
  • 2010-07-25
  • 출처 : KOTRA

 

중국 최대 SNS 기업 일으키기까지

- 다이즈캉(戴志康) Comsenz CEO 성공기 -

 

 

 

 

□ 청년창업 영웅

 

 ㅇ ‘빠링허우’(80後)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신세대를 일컫는 중국어 표현임.

  - 개성과 유행을 중요시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함.

  - 이들은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신흥 소비계층으로 부상함.

  - 이들은 비즈니스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차세대 중국을 이끌어나갈 주력군으로 떠오름.

 

 ㅇ 중국 1위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 전문기업인 컴센즈(Comsenz康盛創想)의 다이즈캉(戴志康 28세) CEO는 성공한 ‘빠링허우’ 창업영웅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보이며 중국 청년들의 롤모델로 통함.

  - ‘창업영웅’이라면 흔히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 여러 번의 실패와 재기, 귀인의 도움과 같은 상황을 떠올리지만 그에게는 ‘다른 스토리’가 있음.

  - 좌절의 시기가 없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시대의 트렌드에 접목해 성공한 경우임.

 

□ 하루 15시간 컴퓨터와 씨름

 

 ㅇ 다이즈캉은 1981년 헤이롱장(黑龍江)성 다칭(大慶)에서 태어남.

  - 다칭은 중국 최대의 유전지역으로 전국 생산량의 50%를 담당

  - 아버지가 대학교수였고 일가진척 중에 교편을 잡은 사람이 여럿 있는 지식인 가정 출신으로 이런 배경 덕에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음.

  - 286부터 586 프로세서까지 업그레이드하면서 프로그래밍 기술도 날로 높아짐.

  -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1995년에 초보적이나마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각종 컴퓨터 기능대회를 휩쓸다시피 함.

 

 ㅇ 그는 자신의 부모가 서구적인 교육을 강조했다고 회상함.

  - 정해진 답을 요구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찾아서 하도록 했고 끊임없이 배우는 노력과 일을 잘 마무리하는 능력을 강조했다는 것임.

 

 ㅇ 다이는 2000년 명문 하얼빈 공대에 입학해 주변에서 모두 그를 부러워했지만 정작 자신은 금세 실망에 빠졌다고 함.

  - 무엇이든 혼자 찾아서 하는 공부를 좋아하는데 입학해서 대학의 낡은 교과서를 보니 무엇을 배우겠나 싶었다는 것

  - 성적이 좋을 리가 없어 4학년 때까지 무려 15개 과목에서 낙제하는 통에 보충시험을 수도 없이 치     른 끝에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음.

  - 물론 단순히 학업을 게을리 한 때문이 아니었으며 2학년 때부터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면서 사업가의 길로 나선 덕에 생겨난 ‘영광의 상처’라 할 수 있음.

 

 ㅇ 그가 처음부터 사업가의 꿈을 꾼 것은 아니었음.

  - 대학입학 무렵 인터넷 붐이 일기 시작했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모르는 사람과 만나 정보를 주고받는데 흥미를 느낀 그는 스스로 게시판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고 함.

  - 자신이 개발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낯선 사람들이 서로 알게 돼 친구가 되고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다면 참 멋진 일이며 나중에 좋은 직장 잡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함.

 

 ㅇ 대학 2학년 때인 1981년 그는 교문 밖으로 뛰쳐나옴.

  - 월세 300위앤 짜리 방을 얻어 하루 15시간씩 컴퓨터와 씨름한 끝에 오래지 않아 첫 SNS 프로그램인 ‘디스커즈’(Discuz)를 개발함.

  - 2002년부터 무료 서비스를 시작함. 이것이 현재 중국 1위 인터넷게시판 서비스업체인 컴센즈의 모태가 됨.

 

□ 시련기에 찾아온 기회

 

 ㅇ 다이는 2003년 디스커즈의 유료화를 선언함

  - 디스커즈 사용자가 급증한데다 속도와 안전성에서 다른 유료 프로그램을 압도한 상황에서 무료 서비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음.

  - 그러나 막상 유료화를 선언한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음.

  - 그때까지 무료로 사용하던 네티즌들이 온갖 악플을 쏟아냈고 인격모독에 가까운 욕설도 서슴지 않았음.

  - 당시 다이가 내놓은 소프트웨어 유료화 가격은 500위앤이었는데, 이후 6개월 동안 단 하나도 팔리지 않았음.

 

 ㅇ 그 무렵 연봉 30만 위앤의 일자리 제의가 들어옴.

  - 온갖 비난에 시달리던 터라 안정된 길로 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워 제의를 거절함.

  - 그는 “어차피 안 팔릴 것, 값이나 더 올리자는 생각”에 판매 가격을 2000위앤으로 대폭 올렸음

  - 어느 날 홍콩의 한 기업이 그를 찾아와 디스커즈를 사겠다며 몇 가지 추가사양을 요구함.

  -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냐고 묻기에 1주일이면 된다”고 했고, 그 홍콩 기업은 1주일 내 완성하면 3000위앤에 사겠다“고 했음.

  - 다이는 1주일 내 완성했고 여기서 자신감을 얻어 업그레이드 버전 개발에 몰두함.

 

 ㅇ 당시 유사 프로그램들이 무료로 나돌았지만 속도와 용량 면에서 형편 없었음.

  - 유사 프로그램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용자들을 한데 묶을 수 없었던 것임.

  - 2003년 10월에 나온 디스커즈의 뉴 버전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잘 팔려나갔고 그는 몇 달 후 50만 위앤이란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었음.

 

 ㅇ 2004년 졸업과 함께 베이징 중관촌(中關村)으로 날아와 컴센즈(Comsenz 康盛創想)를 설립함.

  - 등록자본금은 헤이롱장에서 번 50만 위앤이었고 1인 회사로 출발한 탓에 설립과 등록에서부터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작 힘들었던 것은 그다음 단계였음.

 

□ 구글의 투자를 받다

 

 ㅇ 성공한 사람에겐 남과 다른 점이 있기 마련임.

  - 창업초기의 에피소드. “작은 사무실에 전화기 2대를 놓고 시작했음.

  - 한쪽 전화로는 사장이라고 말하고 다른 전화로는 마케팅 담당직원이라고 응답했다고 함.

  - 1인 회사라면 우습게 볼까 봐 목소리를 바꿔가며 고객에 응대한 것이었음.

 

 ㅇ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직원 채용이 급선무였음.

  - 처음엔 한 달에 십여 차례 면접을 보고 그 중에서 한두 명을 뽑을 정도로 신중을 기함.

  - 기술에 기반을 둔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인재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때문이었음.

  - 현재 컴센즈의 직원은 200여 명. 이 가운데 80%가 프로그래머임.

 

 ㅇ 중국의 인터넷 인구가 급성장하면서 성장 전망이 날로 커지자 투자도 줄을 이었음.

  - 미국의 대표적인 벤처투자회사로 구글과 애플에 투자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 모닝사이드 벤처(Morningside Ventures)는 물론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구글 등 해외 정상급 펀드와 기업들의 투자액이 1000만 달러를 넘어섬.

  - 회사 자산이 1억 위앤을 훌쩍 뛰어넘었고 개인 현금자산만도 2000만 위앤에 달함.

  - 이렇게 해서 그는 중국 인터넷 산업을 성장시킨 10대 인물 반열에 오름.

 

□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해야”

 

 ㅇ 다이즈캉의 스토리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과 성장과정을 떠오르게 함.

  - 대졸 청년실업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국에서 그는 이제 창업은 물론 취업 상담사로도 명성을 쌓음.

 

 ㅇ 그가 자신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함.

  - “실패 또는 성공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복제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함.

  - 대학에서 자신이 진정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울 수 없었기에 학교를 멀리 했지만 이런 방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함.

  - 먼저 자신의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용기와 고집을 가지고 매진하는 것이 성공의 요체라는 것임.

  - 그는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일을 잘 하는 것”이라며 마치 마라톤처럼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바로 발 아래의 길이지 멀고 먼 종점이 아니라고 말함.

  - 처음엔 작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후에 조금 더 큰 목표들을 지향하는 것이 오늘의 다이를 있게 했다고 볼 수 있음.

  - 그의 성공은 입시위주 교육에 찌들고 판에 박힌 길을 가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뚜렷한 메시지 하나를 던져줌.

 

 

 자료원 : 인터뷰, KOTRA 베이징K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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